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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반짝반짝 빛나는 리뷰 동사무소로 택배가 왔다. 초등학교이름이 찍혀있는 익숙한 갈색 대봉투... 에쿠니 가오리의과 흰색과 검은 카카오 색이 적절히 마블링을 이룬 여러가지 모양의 벨기에 길리안 초콜릿이 대봉투의 모든 공간을 적당히 채우고 있었다. 마치 그 두 물건을 보내기 위한 맞춤형 택배봉투인 양. 물론 그 택배봉투의 빈공간을 없애기 위해 책 옆에 적당한 크기의 초콜릿을 끼워넣은 셈일테지만... 책을 선물로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책을 샀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산이 늘어가는 기분이다. 책을 택배로 선물 받는 기분은, 게다가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택배로 선물 받는 기분은 그 이상의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늘 그렇듯도 여성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문체를 보여준다. 계장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여러.. 더보기
어린왕자 리뷰 교과서에도 나오고 수없이 많은 단체에서 추천하는 고전이지만, 사실 지금껏 책을 완전하게 읽어본 적이 없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쭉쭉 읽혀가는 쉬운 책이지만 모든 대화글이 다 철학이며 깨달음이다. 삶, 사랑, 존재의 이유, 집착, 소유, 죽음, 관계 등....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고민하는 가장 본질적인 철학들이 매우 쉽고 아름다우며 순수하고 진지하게 그려져있다.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장미꽃이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된 거란다. " "내 꽃을 위해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되풀이 했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야. 너.. 더보기
태엽 감는 새- 집 없는 달팽이의 운동장 돌기 아 답답해. 답답해 미치겠다. 가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마치 조그만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몇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는 실제의 삶 속에서, 추상적이고 막연한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관계가 나오고, 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간다. 그 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알 수 없는 대화들은 집 없는 달팽이처럼 속도감없이 이어진다. 그것도 같은 곳을 계속해서 빙빙 도는 듯한 느낌 때문에 더 답답해진다. 집 없는 달팽이가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봤더라면 조금 덜 답답했겠지만, 그 놈의, 집 없는 달팽이는 200M 운동장을 마라톤의 거리만큼 한 없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 더보기
봉순이 언니 후기 놀란 할아버지는 소년을 나무랐다.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랐단 말이냐?" 소년은 대답했다. "나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고 그 말을 자랑스러워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말한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봉순이 언니, 공지영, 푸른숲- 상대방이 아파하고 힘들어해도, 사람들은 늘 자기만의 사랑법으로 상대방을 대하곤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아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해본 적은 있지만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해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죽겠고, 그리고 그 마음만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한.. 더보기
6도의 악몽 지구시스템은 언제나 균형을 찾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고대 백악기에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구는 균형을 찾기 위해 그 이산화탄소를 다시 거두기 시작한다. 거대한 숲 속에 이산화탄소를 저장시켜 화석화해 두꺼운 석탄층을 이룬다. 또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썩어가는 플랑크톤의 잔해 형태로 퇴적시켜 석유를 만든다. 이러한 고대 탄소순환과정은 엄청나게 오랜 기간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 기간을 통해 겨우 균형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거두어둔 탄소들의 결과물, 즉 석탄, 석유, 가스를 태움으로써 다시 그 탄소들을 대기 중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은 고대에 균형을 이루었던 기간의 백만배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아무리 지구시스템이 균형을 찾는 방.. 더보기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인 이유에 대해 잠깐 생각해봤는데 초기 작품을 제외하곤 현실감이 떨어지는 설정- 초기 작품을 제외한 작품엔 대부분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며, 또 그 다른 세계가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뚜렷한 결론도 없다. 지나치게 지적인 대화-어떤 사람들은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생각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며 허세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끝을 모르는 묘사- 아주 사소한 사물의 묘사만으로도 몇장에 이르는 묘사력은 감탄스럽기도 하고, 인내심을 요하기도 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이제 막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와 우려가 함께 한다. 더보기
공중그네 내 차 안에 있는 공중그네를 보고 말했다. "이 사람 소설은 다 재밌어." "응 그런데, 오쿠타 히데오 소설은 다 비슷비슷해." 오쿠타 히데오 소설은 다 비슷비슷하다, 비슷한 등장인물에 비슷한 성격과 비슷한 전개구조..... 하지만 그의 소설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밑도 끝도 없이 유쾌하면서도 사회문제나 인간의 심리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때문일테다. 요즘은 사람 성격에 대해, 특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는 되지만 수용은 되지 않는 그런 류의 성격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들이 기대에 부응하려는 그런 성격말고, 내 멋대로 행동하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한다. "그런 행동을 1년 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 더보기
불륜과 남미 불륜을 바라보는 관점이 진부하거나 끈적하거나 비도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마냥 아름답지도 않다. 지극히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그저 사랑의 또 다른 형태로, 하지만 '열정', '안타까움', '진부', '비도덕' 등은 배제된 채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속에 그려지는 남미의 모습은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풍요롭게 살지는 못해도 그들의 삶의 만족도는 늘 높아 보인다. 그들에겐 열정과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부가 인생의 목표인 우리들과는 삶의 태도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넉넉하진 못해도 늘 행복의 후광이 뒤따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지는 최고의 여행 친구였다.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게 하는 데는 천재적이었다. 그는 내 사소한 동요나 불쾌함을 보고도 적절히 못 본 척 해주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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