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태엽 감는 새- 집 없는 달팽이의 운동장 돌기

아 답답해.
답답해 미치겠다.
가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마치 조그만 상자에 몸을 구겨 넣고 몇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는 실제의 삶 속에서, 추상적이고 막연한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관계가 나오고,
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알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간다.
그 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알 수 없는 대화들은
집 없는 달팽이처럼 속도감없이 이어진다.
그것도 같은 곳을 계속해서 빙빙 도는 듯한 느낌 때문에 더 답답해진다.
집 없는 달팽이가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봤더라면 조금 덜 답답했겠지만,
그 놈의, 집 없는 달팽이는 200M 운동장을 마라톤의 거리만큼 한 없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답답해 미치겠다.
결국 삶에 대한 성찰이라든지, 자아성찰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 삶을 돌아보는 일은,
집 없는 달팽이가 운동장을 마라톤의 거리만큼 빙빙 도는 것과 같은 것....
요컨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요?
정말 그렇잖아요?
언제까지고 늘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누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만일 가령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말예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까.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생각하면 되니까'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우리들은 여기에서, 이순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돼요.
내일 오후 나는 트럭에 치여서 죽을지도 몰라요.
사흘 후 아침에 태엽 감는 새님은 우물 속에서 굶어 죽어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무엇이 일어날지 누구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필요한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죽음이라는 존재가 생생하고 거대할수록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태엽감는새 2권 욕망의 뿌리 中-

 

반응형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짝반짝 빛나는 리뷰  (0) 2017.11.08
어린왕자 리뷰  (0) 2017.11.03
봉순이 언니 후기  (0) 2017.10.25
6도의 악몽  (0) 2017.09.16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인 이유에 대해  (0) 2017.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