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앵무새 죽이기 리뷰- 차별과 관용에 관한 소설

"할머니! 똥을 눌 땐 오줌이 저절로 나오는데, 왜 오줌을 눌 땐 저절로 똥이 나오지 않는거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시는 한 여사님의 손주가 한 얘기이다. 
어린 아이가 바라본 세상은 온통 의문투성이고, 
어른이 되면서 잊고지냈던 그런 소소한 의문점들을 아이라는 순수한 매개체를 통해 듣게 되면
그 자체로 유머가 되기도 한다.
순수한 시선은, 의도치 않은 웃음 코드와 사회 비판을 수반한다.
<호밀밭의 파수꾼>특유의 위트와 풍자는 기성세대가 아닌 소년이 세상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새의 선물>에서의 해학적 문체도 사춘기 소녀의 시점에서 기인한 것다.
<앵무새 죽이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굳이 비꼬려하지 않아도 꼬여있고,
굳이 파헤치지 않아도 부조리의 온상이다.
세태를 비판하려는 작품을 어른의 시선에서 썼다면 작품은 무겁고 재미없는 훈계만 늘어놓는 꼴이 되어버렸을 거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잃다보면 쉴 새 없이 실소가 터져나오고,
부조리하고 기성세대에 일조하고 있는 내 모습에 뜨끔해지기도 한다.
수식 요소를 빼면 필수요소만 남는다.
"세상의 모든 형용사를 빼고나면 사실만 남는단다."라는 구절이 나왔던 것 같다.
"수식 요소를 빼면 필수요소만 남는다."라는 영문법적 규칙과 맥락을 같이하는 말이렷다. 
세상은 온통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되어있다. 
그래서 그 안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사실이 무엇인지, 필수요소가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포장하고, 스펙을 포장하고, 성격을 포장하고, 환경을 포장해가면서
정작 자신의 진짜 알맹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공평한 시선
"어떤 흑인들은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어떤 흑인들은 강간을 하기도 하며, 어떤 흑인들은 도둑질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떤 백인들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려는 맘은 없다.
악행을 저지르는 건 개인의 문제지 어떤 인종이나 집단이나 지역의 문제일 수는 없다.
물론 조금 더 그런 성향이 두드러지는 집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집단에 속해 있다고 해서
불공평한 시선이나 처사를 받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스카웃의 아버지는 변호사다.
백인인 그는 흑인을 변호했고, 그 시대(1930년대)엔 그것 자체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냥 약자에게도 똑같은 기회와 공평한 시선을 나눠준 것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약자에게도 똑같은 기회와 공평한 시선을 주는 것에 대한 상대적
피해의식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작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진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지만 집 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가진 자들의 술수 때문이다.
종부세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돈 있는 자들의 자녀들만 다닐 수 있는 자사고는 날이 갈수록 인기가 많아진다.
부는 세습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하지만 확연하게 드러나는) 계급 사회에서 그들은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가난과 배우지못함을 세습받은 하층민들은 커다란 계급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다.
참으로 조화롭고 균형잡힌 계급사회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부럽지 않다.
죄가 되는 것과 죄가 되지 않는 것의 구분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중 략 ..............................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죄라는 것은 사회의 규범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태도 또는 그 태도를 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옳고 그름은 절대적일 수 없는 것이나, 인류가 억겁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그 보편적인 룰을 만들었고
그것을 어기게 되면 죄라 명하고 벌을 주게 된 것이다. 
죄를 규정 짓는 기준이 결국은 보편적 가치라는 애매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유죄"유무가 논란이 되곤 한다.
강기갑 의원 사건이나 PD 수첩 사건이 무죄로 판결났다고 개거품 물고 계란을 던져대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건
판결이 보편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치새와 앵무새...
무엇이 유죄이고 무엇이 무죄인가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헷갈리고 또 그 판단 역시 수없이 바뀔 수 있다.
편견 해소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 속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한 편견들
이 책에선 1930년대에 얼마나 인종차별적인 시선들이 득세했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편견들과 싸워나가는 한 인간의 고군분투와 그 숭고한 뜻에 감동받게 된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불편해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흑인들의 말투를 번역한 "사투리"이다. 
어떻게 보면 원작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이겠지만 이 책 속에서 흑인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되어있다.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웃어넘길 수도 없는 문제이다. 
역사와 함께 해온 가난과 소외의 지역, 그리고 지금도 좌빨, 전라디언이라 폄하받는 지역의 사투리와 
차별받는 흑인들의 사투리가 흡사하다고 느껴서 그렇게 번역한 것인지, 아님 작가 개인적인 선입견이 작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무식하고 비열한 조폭들은 모두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기분나쁜 일이다. 
성공한 사장이나, 훌륭한 성품의 교사나,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일이 없다. 
현실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현실을 반영하는 것보다 조심해야할 것은
(이러한 매스컴에서의 무의식적인 주입이) 현실에 반영되는 것일테다.



하퍼 리/김동욱 옮김/문예출판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