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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

여교사(Misbehavior) 리뷰

영어제목이 Misbehavior이다. 

부정행위를 뜻한다. 


극중 재하가 혜영에게 이런 말을 한다. 

"벌? 누나가 나를 만나는 게 그런 의미예요?"

결국 부정 행위로 인한 벌을 받고 있단 이야기다. 


무엇이 부정 행위인가? 


학생과 여교사의 사랑?

아니면 미성년자와 성년의 사랑?

법적인 문제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잘 모르겠다. 

효주가 나타나기 전 재하와 혜영의 만남은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김하늘이 이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솔직히 미스캐스팅이다. 표정부터 발성까지 현대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이 있다. 게다가 그 우울한 표정과 답답하기 그지 없는 대사들은 소위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용어로 질환유발자이다. 뭐 개봉 당시 뉴스나 리뷰를 보면, 교직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들춰냈다.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 이 비극이 일어났다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동의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가 다른 사람으로 투영되어 이 비극이 일어나려면 좀 더 관객의 동의를 얻었어야했다.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오히려 인간적인 호감은 혜영에게 더 간다. 악녀라고 하기엔 너무 인간적이다. 철이 없는 것을 악하다고 말할 순 없다. 물론 구조적인 악(사립재단의 횡포나 낙하산 인사)의 수혜자이지만 적극적으로 악을 행사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누가 더 무례하고 누가 더 비열한가?



영화 제목은 여교사지만, 나라면 이 영화 제목을 남학생으로 지었을 것 같다. 이 비극의 시작이자 끝은 바로 이 재하라는 남학생이다. 같은 남자지만 아우리 넘치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에 빠진 여성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것은 부정 행위가 아니라, 불가항력적 행위 아니겠는가?



스포일러가 될까봐 스토리를 길게 적진 않았다. 다만 기대만큼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영화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야한다. 기쁨이나 슬픔같은 아주 간단한 것부터, 폭력이나 에로스 적인 쾌감도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추리를 풀어가는 중에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고요하고 적막한 영화에서도 정화되는 느낌은 얻을 수 있다.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감정이든, 영화를 보는 도중 배출되고 정화된다면 그것은 모두 카타르시스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없다. 오히려 안에 쌓이고 탁해지는 느낌이다. 답답하고 숨이 턱 막힌다. 그러한 감정마저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도 있을테지만 분명 이 영화는 그런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엔딩크레딧 이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공감의 폭을 넓혀주었다. 김태용 감독을 나만의 블랙리스트에 올려놨을지도 모르겠다. '내 영화티켓비 지원을 안하겠음'이라고 메모해두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과오라고 말해둘 것이 하나 있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 작품인 줄 알고 이 영화를 보게 된 것! 이것은 내 과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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