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유가 있는 행동이 어딨어. 다 행동한 후에 이유를 붙이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무언가에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자신이 관심이 있고 어느정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평론가들이 영화나 미술이나 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사실 작가들이나 감독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분에 평론가들이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을 반박할 논리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수긍하는 척하게 된다. 시인 이상이 죽기 전에 방바닥에 금붕어라고 쓰고 죽었단다. 그랬더니 문학평론가들이 의미부여를 해댔단다. 금붕어라고 쓴 이유에 대해..... 같혀 지내는 삶, 자신만의 세상 어쩌구 해댔겠지. 한참후 이상이 쓴 건 금붕어가 아니라 오렌지라는 글자였다고 했다. 문학평론가들은 다시 의미부여를 한다. 사실 이상이 무슨 글자를 썼든 문학평론가들은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결국 작품은 작가보다 평론가들이 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디지털 삼인삼색이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질문을 던진다. 풀샷이라느니, 클로즈업이라는니, 어쩌구하면서 그런 촬영기법에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 홍상수 감독은 말한다. 아무 의미 없습니다. 부연설명도 없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한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었었느냐고 묻는다. 의미 없었습니다. 영화만큼이나 솔직하고 불편한 답변이다. 그래도 관객들은 그 답변조차도 어떤 위트가 담겨져 있는 것 처럼 웃어댔고, 어떤 철학이 담겨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어떤 관객은 필리핀 영화감독에게 영화에서 나오는 닭울음소리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해피투게더 박명수의 질문만큼이나 창피한 질문이다. 모든 대사와 장면과 연기에 의미를 담을 순 없다. 그저 찍다보니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이 찍은 경우도 있다. 홍상수는 그저 솔직할 뿐이다. 그의 영화는 늘 사람들 불편하게 한다. 처음엔 일부러 사람들의 추접스러운 내면을 들춰내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아무리 저예산 영화라지만 전체적인 미장센도 그렇고 스토리 전개도 그렇고 배우의 대사도 그렇고 홍상수 감독이 찍은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홍상수는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논다. 아무렇게나 영화를 만들어보자. 그래도 너희들이 의미부여를 한다든지, 어떤 부분에서 이 영화가 좋았다느니하는 소리를 하는지 보자.라고 작정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웃어댄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웃는다. 그게 홍상수의 힘이다. 그냥 인간의 솔직한 모습은 너무나 솔직한 화법으로 풀어가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는지도 모르겠다.
의미부여 한번 해봤다.
등록일시
2009.05.04 09:24 (업로드 2009.05.04 09:24)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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