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권 뗀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던가?
만날 술만 먹고, 책을 멀리하다니....
내 삶은 점점 현상에만 집중되고,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젠장...
"밤의 거미 원숭이, 태옆 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의 핀볼, 중국행 슬로보트, 빵집 재습격,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렉싱턴의 유령" 그리고 어둠의 저편까지...
어쨌든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물론, 뜬 구름 잡는 얘기이고 정답도 없는 이야기를 풀고 또 풀어서 독자가 지긋지긋해할 때까지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묘사의 정점을 보여주는 그의 소설...
이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각 시간대별로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하는데 특히 에리의 잠자는 모습을 묘사하는 챕터는
정말 인내심을 요한다.
이건 뭐 한두 챕터도 아니고 중간 중간에 에리의 잠자는 모습만을 묘사하는 챕터들은
정말 오로지 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한도 끝도 없이 쪼개고 쪼개고 분석하고 분석하고
그 속에서 상징을 찾아내고..............
그냥 일반인 같으면 "에리가 어두운 방안에서 고요히 잠들어있다."로 끝날 이야기를
무려 소설의 1/4가량을 할애에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입술이 어쩌구, 목 언저리의 움직임이 어쩌구, 눈꺼풀이 어쩌구,
길고 검은 생머리가 뭔가 의미를 담고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다는 둥.....................
아~~~~~~ 토 나와
어쨌든 그 무한의 디테일이 바로 하루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나 한계일 것이다.
삼형제의 우화.
"하와이의 어느 섬에, 삼 형제가 표류한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
옛날 신화지. 어렸을 때 읽은 거라서, 정확한 줄거리는 잊었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야. 젊은 삼 형제가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태풍을 만나 오랫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어느 무인도의 해안에 닿게 됐어.
야자나무 같은 게 우거져 있고, 갖가지 과일도 많이 열려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어. 그 섬의 한가운데는 아주 높은 산이 솟아있었지. 그날 밤, 세 사람 꿈에 신이 나타나서,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해안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세 개의 커다란 둥근 바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각자 원하는 곳까지 그 바위를 굴려가도록 하고, 멈춰 선 바로 그곳이 각자 살 곳이 될 것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세계를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 어디까지 가는가 하는 건 너희들의 자유에 맡긴다' 라고 했다는거야.
삼 형제가 해안으로 가봤더니, 정말 커다란 바위 세 개가 있었어. 그들은 긴이 말한 대로, 비탈길 위로 큰 바위를 굴리며 앞으로 나아갔지. 아주 크고 무거운 바위라서 울리는 게 쉽지 않았고, 비탈길 위로 큰 바위를 밀고 올라가야 해서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막내가 제일 먼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그 손을 들고 말았어.
'형님들, 난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어. 여기쯤이면 바다도 가깝고, 고기도 잡을 수 있으니까,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거야. 난 세상을 그리 멀리까지 보지 못한다 해도 상관 없어." 막내는 뒤에 남고, 두 형들은 바위를 더 위로 밀면서 올라갔지. 산 중턱까지 갔을 때, 둘째도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 ' 형, 나는 이쯤에서 그만 둘래. 여기 같으면 과일도 풍성하게 열리고, 충분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멀리까지 세상을 바볼 수 없어도 난 괜찮아.' 그래도 맏형은 그 무거운 바위를 계속 밀어 올리며 언덕길 오르기를 멈추지 않았어. 길은 점점 험난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지.
본래 참을성이 많은 성격인 데다, 세계를 조금이라도 멀리까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바위를 계속 밀고 올라갔어.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안간힘을 쓴 끝에, 마침내 그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갈 수 있었어. 그는 거기서 멈추어서서, 세계를 내려다 보았어. 이제 그는 누구보다도 멀리까지 세계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고. 그곳이 그가 살아갈 장소가 된거야. 하지만 그곳은 풀도 나지 않고, 새도 날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어. 수분이라고는 얼음과 서리를 핥을 수 밖에 없었고, 먹을 것이라고는 이끼를 씹을 수 밖에 없었지.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어. 세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하와이의 그 섬 꼭대기에는, 지금도 커다란 둥근 바위하나 외따로 남아있다는 대충 그런 얘기야"
마리가 묻는다. "그 얘기 교훈 같은게 있는거야?"
교훈은 아마 두 가지가 있을거야. 하나는 사람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 설령 형제일지라도. 또 하나는 사람이 뭔가를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뭐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상"과 "현실"이겠지.
이상을 추구하면 그 댓가가 따른다.
현실에 안주하면 그 넘어 세상을 보지 못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고민하는 시기는 대부분 20대일 것이다.
꿈, 사랑, 명예, 우정, 지위, 가족...................
수많은 고귀한 가치들이 갈림길에 놓인 시기....
바로 그 때 나도 고민했었던 것 같다.
현실이냐, 이상이냐...
이상이냐 현실이냐라는 질문에 가장 적합한 답은 이미 체게바라가 해주었다.
Be the Realist, but dream unrealistic dream in your heart.
현실주의자가 되어라, 하지만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
다카하시는 이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가난도 말이야, 라이언 오닐이 연기하면 그 나름대로 우아해 보이거든. 하얀 실로 두껍게 짠 털 스웨터를 입고, 알리 맥그로우와 눈싸움을 하는 아름다운 장면에서는 프란시스 레이의 감상적인 음악이 흐르고 말이야. 그렇지만 내가 그런 걸 한다면 꼴이 말이 아니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내 경우 가난은 어디까지나 그냥 가난일 뿐이니까. 눈도 그렇게 적당히 쌓이지 않을 테고 말이야."
그래, 현실을 생각해야지.
안그러면 내 삶은 구질구질해질 거야. ㅡㅡ
무라카미하루키 /임홍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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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의 저편
- 국내도서
-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임홍빈역
- 출판 : 문학사상 200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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