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나서 그 느낌을 정리하려는 일은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감흥들이 무중력상태의 물건들처럼 이리저리 떠나다기만 하고 쉽사리 잡을수도 모을수도 정리할수도 없게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서평을 읽거나, 책 뒤에 쓰인 유명 작가들의 작품 해설을 읽다보면 그 작품에 대한 느낌이 한번에 정리 된다. 아~이런 작품이었구나. 작가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식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무중력상태를 떠돌아다니던 수많은 감정들과 감흥들은 갑자기 무중력장치가 해제되어버린 우주선에서처럼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버리고만다.
그것이 너무 허무해서 읽지 않았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상당한 분량을 할당한<<상실의 시대>>작품 해설을...
휴대전화 광고에서 책이라곤 여성잡지 밖에 읽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여자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고, 한 남자가 그여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런 꿀바른 멘트를 날린다. "노르웨이의 숲엔 가보셨나요?"라는 정말 유치하고 생뚱맞은...(그남자가 이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좋아하시나요? 정도는 됐어야했다.) 어쨌든 이 CF는 엄청난 히트를 했고, 덕분에 휴대폰 보다 상실의 시대가 더 많이 팔리게 되었다. 대학가나 커피숍에서 옆구리에 그 책을 끼고 다니면 지성인처럼 보이던 그 책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교대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기억이다. 벌써 10여년전에 이작품을 읽었지만 그때는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재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읽었다. 그 때의 감흥(이랄것도 없지만)은 '참 야하군. 여기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정신병자 같군. 이해할 수 없어. 왜 이런 책을 다들 필독도서처럼 끼고다니는 거야. 결국 이것도 허영심의 산물야.'라는 정도였다. 10년이 지난후 읽은 이 책에 대한 감흥은 '별로 야하지도 않군. 나오코와 레이코, 미도리와 와타나베, 그리고 심지어 나가사와 선배와 하쓰미, 심지어 돌격대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어. 이들이 정신병자로 취급된다면 나도 정신병동에 썩 어울리는 인물일거야' 였다. 스무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사고방식이, 어느덧 서른이 되어버린 내게, 경험과 사고로 고스란히 전해질 줄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다 읽어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책이다. 활자 하나하나가 다 마음 깊숙이 박히는 듯한 느낌.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나의 젊은 시절(지금도 진행중인)을 되돌아보게 된, 소중한 여행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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