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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

낮술- 유혹이 아닌 거절에 관한 영화

보는 내내 답답하다. 사람들의 부탁이나 부탁을 가장한 강요에 한마디 대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닌다. 우유부단함의 극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은 거절을 잘 못한다고 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누구도 남의 부탁을 딱 잘라 말하는 냉정함을 갖긴 쉽지 않다. 하지만 유난히 부탁을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늘 거절에 관해 고민해야한다. 나도 그런 편이다. 유난히 금전적인 부탁이 많다.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내가 쓸 돈은 없어도 일단 빌려주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저기 뿌려진 나의 돈들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또 그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또한 회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난 내 돈들을 나도 손대지 못하는 일년단위 적금이라든지 교직원공제회 장기저축에 넣기 시작했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바에야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게 나을 것 같아서다.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라. 안나오려면 그렇게 해라. 다시는 안보면 되니까. 너는 누가 부를 땐 나가고 내가 부를 땐 안나오냐. 마셔라. 후래자 삼배다. 왜 완샷을 하지 않고 꺾어마시냐. 짠~을 했으면 마셔야지. 마시다 말고 어딜 도망가냐. 거절하기 쉽지 않은 술자리. 술 권하는 사회. 우리 동사무소 계장님은 술을 마실 때마다 첨잔을 한다. 어떤 사람은 완샷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입술만 적시기도 하지만 항상 첨잔을 한다. 계장님께서는 첨잔이라는 말대신 배려라는 말을 사용하신다. 누가 얼마큼 마셨는지 굳이 일일이 다 확인하고, 다 마시라고 강요하고 할 필요 뭐 있겠느냐. 그냥 자신이 기분좋을만큼만 마시고 항상 가득 채워놓으면 누가 얼마큼 마셨는지 모르니까 누구나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그래서 계장님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선 술을 잘 못마시는 사람들도 늘 즐겁다.
이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못생긴 여자의 부탁이 또 가관이다. 물론 기이한 그녀의 행동 또한 문제가 있지만 예쁜 여자가 같이 경포대에 가자든지, 같이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자는 부탁을 했다면 수락하지 않았을까. 반대로 못생긴 여자가 낮술을 사달라고 했다면 거절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같은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자들 또한 그랬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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