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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영화 - 러블리 본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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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로서 최고의 입담꾼인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고
판타지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해내는 피터잭슨이 연출을 맡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름값 못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웰메이드라고 얘기하긴 힘든 작품이다.

 

 

 

소재도 신선하지 않을 뿐더러,
구천을 떠도는 한 맺힌 영혼이라는 그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사랑과 영혼>에서 페트릭 스웨이지가 동전을 올리는 장면같은 명장면이 없었다는 거다.
감정선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면 판타지적인 요소라도 극대화 시켰어야했다.

피터잭슨은 이미지를 통해 관객과 대화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대사나 연기보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영상을 통해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주인공 수지의 심정 변화에 따라 주변의 사물과 환경들이 쉴 새 없이 변해간다.
마치 문학으로 따지자면 시와 같은 작품이었다.
온갖 장면들 속에선 "은유", "함축", "추상" 등의 용어와 어울릴 듯한 영상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이 영화의 스릴러적인 요소나 판타지적인 요소는 줄어들고 지루한 전개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시적인 요소들로 인해 굉장히 예술적인 작품으로 거듭났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은유나 함축이나 추상은 매우 유치한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예를 들면 수지가 기쁘면 해가 뜨고,
슬프면 비가 내리고,
화가 나면 천둥이치고,
분노하면 얼음세상이 되는 것 처럼 일차원적인 수준이었단 말이다.

 

 

 

 

 

천국이나 구천을 형상화한 장면은 물론 훌륭했지만
그것은 피터 잭슨이 아니라도 충분히 표현할만한 수준의 것이었다.
거기다, 결말씬 마저 갸우뚱하게 만든다.
수지는 천국에 가기 전에 다른 여자의 몸을 빌려, 첫사랑 소년과 첫키스를 하게 된다.
같은 시각, 살인범은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수지의 시체를 폐기물 처리장에 버린다.
그리고 수지의 부모들은 긴 고통의 시간을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의 영상이 비췬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그동안의 고통으로부터 치유되고 새삶을 계속살아간다라는 뉘앙스의 장면을 연출한 것 같은데,
찜찜하기로는 X 안닦은 것과 비견될만 하다.
자신의 시체가 유기되는 상황에서 왜 수지는 첫사랑과(그것도 아무런 추억조차 없는) 키스를 해야만 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잔인한 장면과 아름다운 장면을 교차해서 끈질기게 보여주는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부모는 범인이 밝혀진 상황에서 왜 갑자기 그렇게 평온해지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살인범에게 벌을 주긴 하지만,
그것은 축복에 가깝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범에게 고통도 느낄 새가 없는 실족사는 차라리 은총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감동도, 카타르시스도, 페이소스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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