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하는 선생님 차 뒷자리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읽다보면
순간순간,
들이쉬는 숨과 함께 가슴과 배가 떨려오며 코 끝이 찡해지곤 했다.
빨개진 눈을 들키지 않으려, 숨죽여 읽던 그 책을
오늘 다 읽었다.
누군가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고, 그저 논픽션이 아닌 픽션으로서의 냄새가 강한 작품이었다고
이 작품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랬다.
엄마을 잃은 한 여자가 쓴 처절한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그리고 그동안 엄마를 잊고 살았던 나에게 향하는 손가락질 같은 작품.
이번주 금요일에 작은 누나가 있는 포천에 올라갔다.
몇 주전부터 벼르고 있던 엄마는 이번주에는 올라갈끄나 하고 물으셨다.
내가 태어난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보게된 핏줄이 그렇게도 그리우셨나보다.
고생스런디 우리가 전주로 가서 니 차를 탈끄나 아님, 장수로 와서 갈끄냐. 하셨다.
전주에서 만날꺼면, 감자는 택배로 붙여야지. 하셨다.
명절 때도, 형이 처음 집을 얻어 보러 가셨을 때도, 누나가 포천으로 이사했을 때도 엄마는 시골집에 있는
음식이란 음식을 다 챙겨가셨다. 김치, 감자, 양파, 마늘, 파는 그렇다쳐도 도시마트에서 더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쿠르트며 캔맥주까지 바리 바리 싸셨다.
그런 엄마를 알고 있는데, 첫 손녀를 보러 가시는 엄마가 며칠 째 이것저것 얼마나 챙기셨을지 안봐도 뻔한 거였다.
장수로 갈게요. 하고 말씀을 드리자 그럼 감자도 가지고 갈 수 있겠네. 하셨다.
조퇴를 하고 장수집에 가서 엄마가 싸놓은 짐들을 차에 실었다.
감자는 택배로 보낸다 쳐도, 다른 것들은 어떻게 이고 지고 가실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차 3열 시트를 다 눕히고, 미리 책보에 싸놓으신 것들을 옮기고 출발하려하자
엄마는 장날 읍내에서 사셨다는 만원에 두장한다는 이불을 챙겨오셨다.
손녀 딸 여름이불이란다.
아빠는 옆에 멀뚱하게 서서 헛기침만 해대신다.
포천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연신 웃음을 보이신다.
당신의 딸내미가 낳은 딸내미를 안아보시곤 그 쭈글쭈글한 눈가에 웃음이 번지셨다.
애기 목이 꺾일까 노심초사하는 누나와는 달리 엄마는 우리 4남매를 키우셨던 관록이 자신있으신 듯,
30년만에 안아보는 갓난쟁이를 흔들흔들하시며 눈을 떼지 못하셨다.
하품을 하고, 재채기를 하고, 손발을 바둥대기라도 하면 어이구어이구 장단을 맞추시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신다.
아버지는 그렇게 계속 안고 있으면 버릇 잘못든다. 너희 키울 때는 방 한쪽에다 내방쳐놓고 때되면
젖만 물렸어도 다 잘 컸다. 하신다.
모성은 본능이고, 부성은 학습이라더니....
난 누나가 첫 조카를 낳아줘서 고맙지만,
사실 엄마를 저렇게 웃게 해줄 수 있어서 더 고맙다.
내가 갓난쟁이였을 때도 엄만 저렇게 웃으셨겠지?
그리고 지금은 우리 4남매때문에 웃으실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다들 손주를 안겨드리나보다.
그게 엄마를 웃게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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