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는 잠이 들었다. 유난히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다. 젖을 물 때도, 잠이 들어야할 때도 두리번 거리느라 집중을 하지 못한다. 구경하는 것을 방해하고자 눈이라도 가리면 울고 불고 떼를 쓴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잠이 들지못하면 더 힘들거란 걸 알기에 눈을 가리고 잠을 재운다. 그렇게 아빠랑 한바탕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단잠이 든 아가 옆에서 혹여라도 선잠을 자며 눈을 뜰까 노파심에 자리를 뜨지 못한다. 다리라도 한번 들썩하거나 고개라도 한번 저을 때면 잠이 깰까 가슴이 덜컹한다. 요즘은 가장 무서운 게 우리 아가가 자다가 눈을 번쩍 뜨는 것이다.
아가는 다시 잠이 들었다. 십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낑낑대며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가짜 울음을 울어댔다. '쉬~~~~~'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잠을 재우려는 자와 잠을 자지않으려는 자와의 치열한 신경전이 끝나고, 아가는 다시 잠이 들었다. 반투명 젤리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잘도 잔다. 가장 이쁜 모습이다.
아이 엄마는 바깥 나들이를 나갔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니, 자기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듯 싶었다. 순한 우리 아가는 나 혼자 볼 수 있으니 소중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며 인심을 좀 썼다. 출산을 하고 나서 휴직을 하고 아가와 단둘이만 지내다 보니, 아가가 나인지 내가 아가인지, 아가가 울고 있는 것인지 내가 울고 있는 것인지, 아가가 잠이 드는 것인지 내가 잠이 드는 것인지모를 카오스를 겪고 있는 듯 했다. 내가 해결해줄 순 없어도, 회피할 잠깐의 시간은 확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단다.
아가는 잠들어 있다. 우리 각시는 바깥나들이에 행복해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별 일아닌 일상들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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