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모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왠지 미혼 남자들에겐 부끄럽기도 하고 뭐라 반응하기 애매한 단어이다. 아가를 낳고 기르다보니 모유가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또 부족한 사람들에겐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나중에 엄마가 직장을 나갈 때를 생각해 지금부터 젖병 무는 연습을 시킨다. 유축해놓은 젖을 젖병으로 물리다보면 이 놈이 엄마의 촉감과 젖병의 촉감이 다른지 얼마 먹지 못하고 떼를 쓰며 거부를 한다. 모유수유도 어렵지만 유축하는 일 또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기껏 준비한 유축한 젖의 잔량을 그냥 개수대에 버릴 때마다 아깝기도 하고 뭔가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돈주고도 못산다는 모유비누 만들기에 도전~
일단 재료는 11번가에서 키트로 구입... 이것저것 준비할 것들이 많아서 차라리 10개용 세트로 구입했다.
얼려놓은 모유에 가성소다를 넣으며 젓다보면 모유가 녹으며 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성소다가 이렇게 위험한 물질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나 가스가 많이 발생하던지... 방에서 만들다 돌아가실 뻔 했다.
모유가 녹는 동안 오일을 전자렌지를 이용해 녹여준다. 모유와 오일이 둘다 40~45도의 온도가 되게 한 후 둘을 섞어주면 된다.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상당시간 젓다보면 점도가 진해져서 스프처럼 변한다.
이 때 오트밀, 비타민 등 다양한 첨가제를 넣고 좀 더 오래 저어주다보면 묵직한 점성이 생긴다. 그럼 이제 틀에 넣으면 끝인데.... 틀이 없다. 실리콘 틀은 하나에 2만원이나 한다. 배보다 배꼽... 그래서 동네슈퍼에서 쿨피스 하나 사서 원샷한 후 비누틀로 사용했다.
초기 발생하는 열을 잡기 위해 쿨피스 팩에 두꺼운 수건으로 보온을 한 후 하루 이틀이 지나면 적당히 굳는다. 그럼 쿨피스 팩은 과감하게 찢어버리고 안에 담겨있는 비누가 굳으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6주가 숙성시키면 끝!!!
이틀 지난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면 된다
아가 아토피에도 좋고 성인들이 사용해도 좋다고 한다. 워낙 효능이 좋은 것은 알지만 모유가 워낙 귀하고, 또 설령 젖이 남는 엄마들이 있어도 모유비누 만들 여력이 없어서 모유비누 사용하기가 쉽진 않다. 물론 돈을 받고 파는 곳도 있지만 모유의 출처가 불분명해서 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가끔 젖 먹이는 기계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해진다는 아내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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