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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에른스트 탤만 동상,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다

댓씽유두 2025. 1. 1. 15:21


베를린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구에 우뚝 서 있는 에른스트 탤만 동상이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1986년 동독 시절 건립된 이 거대한 동상은 독일 통일 이후 30여 년간 보존과 철거를 둘러싼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최근 베를린 시의회에서 동상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한 토론이 재개되면서, 독일 사회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 인식에 대한 논의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에른스트 탤만, 독일 공산주의의 상징적 인물
에른스트 탤만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 공산당(KPD)의 지도자로, 나치 정권에 의해 11년간 감금되었다가 1944년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된 인물이다. 동독 정부는 그를 반파시즘 투쟁의 영웅으로 추앙했으며, 1986년 소련 조각가 레프 케르벨이 제작한 높이 13미터의 거대한 청동 흉상을 베를린 중심부에 세웠다. 동상이 세워진 공원은 '에른스트 탤만 공원'으로 명명되었고, 주변에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었다.


통일 이후 끊이지 않는 논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이후, 탤만 동상의 처리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다. 1993년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구의회는 동상 철거를 결의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보존과 철거를 주장하는 양측의 의견 대립이 계속되었고, 2006년 베를린 시가 동상의 관리 책임을 맡게 되면서 일단 보존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2014년에는 문화재 지정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동상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
탤만 동상의 처리를 둘러싼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동독 체제의 상징물로 보고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째, 역사적 교훈을 위해 보존해야 한다는 견해다. 셋째, 동상을 그대로 두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자는 중도적 입장이 있다.
철거를 주장하는 측은 탤만이 스탈린주의자였으며, 동독 정권이 그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했다고 비판한다. 반면 보존을 주장하는 이들은 탤만이 나치에 저항한 반파시스트 운동가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동상이 과거사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중도적 입장에서는 동상을 그대로 두되, 탤만의 삶과 동독 시기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는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비판적 성찰을 가능케 하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상, 그 이상의 의미
탤만 동상 논쟁은 단순히 한 조형물의 존폐 여부를 넘어, 독일 사회가 자국의 복잡한 20세기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치즘과 공산주의라는 두 전체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한 독일에서, 과거사 청산과 역사 인식은 여전히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다.


특히 동독 출신 주민들에게 탤만 동상은 단순한 정치적 상징을 넘어 자신들의 삶과 기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동상이 세워진 주거단지에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에게 탤만 공원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동상의 처리 문제는 동서독 출신 주민들 간의 인식 차이와 갈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역사 교육의 장으로서의 가능성
최근에는 탤만 동상을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동상을 그대로 두되, 탤만의 생애와 동독 시기의 역사, 그리고 동상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까지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안내 시설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이는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비판적 성찰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독일의 역사 인식 방식과도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를린 역사박물관의 한 학예사는 "탤만 동상은 20세기 독일 역사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며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 경관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한편, 탤만 동상의 예술적, 도시계획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13미터 높이의 거대한 청동상은 그 자체로 인상적인 조형물이며, 주변 주거단지와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동독 시기 공공미술의 대표적 사례로서 문화유산적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베를린 도시계획 전문가인 마르쿠스 슈미트는 "탤만 동상과 주변 단지는 1980년대 동독의 도시계획과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며 "이를 보존함으로써 다양한 시대의 흔적이 공존하는 베를린의 특성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한 탤만 동상
베를린의 탤만 동상 논쟁은 독일 내부를 넘어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 시대나 인종차별과 관련된 동상들의 철거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베를린의 사례는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런던대학의 역사학자 제임스 윌슨은 "베를린의 탤만 동상 논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역사적 성찰의 좋은 사례"라며 "동상을 단순히 철거하는 대신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은 다른 나라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앞으로의 전망
현재 베를린 시의회는 탤만 동상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완전한 철거보다는 보존하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는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탤만 동상을 둘러싼 논쟁이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건설적인 대화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베를린의 탤만 동상 논쟁은 역사와 기억, 도시 공간과 정체성이 교차하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동상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 이 논쟁이 어떤 결론에 이르든, 그 과정 자체가 역사적 성찰과 사회적 대화의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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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Müller, J. W. (2018). Memory and Power in Post-War Europe: Studies in the Presence of the Past. Cambridge University Press.
Ladd, B. (2008). The Ghosts of Berlin: Confronting German History in the Urban Landscap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Fulbrook, M. (2019). Reckonings: Legacies of Nazi Persecution and the Quest for Justice.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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