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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 리뷰

조조영화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갔더니 영화관엔 나 혼자였다. (아, 원스 때 이야기이다.) 혼자 영화관을 차지하는 일은 영화관엔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늘 흥분되는 일이다. 영화관을 전세 낸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나만을 위해 영화가 상영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물론 조금 소름끼치기도 한다. 어두운 영화관에 나홀로 있는 기분이란....... 혼자 영화 본 경험은 꽤 있다. 전주 피카디리 영화관이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바뀌고 나서 봤던<여자, 정혜>라든지<에듀케이터>그리고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의 조조상영, 아니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의 초기상영작들...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바로<원스>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년동안 ost는 내 즐겨찾기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비긴 어게인. 
원스의 속편이라 생각하고 봤다. 홍보도 약간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고 말이다. 하지만<원스>와 같은 다양성 영화라고 부르기엔 스케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사실 전형적인 주류 영화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스토리와 배우 인지도, 영상미를 갖추고 있다. 원스로 성공한 아일랜드 감독 존 카니의 미국 상륙작전처럼 보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상륙작전은 매우 훌륭했다. 성공적이었다.
주관적인 평으로만 말하자면 원스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감각적이고, 감동적이고, 세련됐다. 음악이 주는 깊이도 만만치 않으며, 시종일관 지루할 틈이 없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이 사랑스럽다. 애증이 얽힌 많은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사랑스럽다. 집 나간 아빠와 삐딱한 딸,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된 락스타와 그 여자친구.. 성공한 동료와 그렇지 못한 동료. 그들의 갈등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며 그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간적 고뇌에서 오는 갈등들이다. 그리고 그 갈등의 깊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전혀 우울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히려 상처입은 영혼들의 방황과 고뇌들이 이토록 유쾌하게 표현될 수 있나 싶을 정도이다.

시간의 배치가 매우 매력적이다. 마치 500일의 썸머처럼! 
플래시백같은 촌스러운 회상씬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과거와 대과거와 현재진행이 섞여있다. 가끔 시간 구성이 뒤죽박죽이면 헷갈리기도 하지만.... 이영화는 마치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그레타가 노래하는 첫 장면>오프닝부터 인상적이다. 올해 최고로 기억에 남는 오프닝을 뽑으라면..... 가장 현실적이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농밀했던 해무!!(사실 해무는 오프닝은 뭴메이드이지만, 뒤로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인간의 욕정을 이해하기 힘든 면은 있다.)와 비긴 어게인이다. 제작일을 하면서도 몇년동안 이렇다할 성과를 올리지 못한 댄(마크 러팔로)은... 우연히 술집에서 노래하는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를 보고 상상 속 편곡을 하게 된다. 실제로는 그레타가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춰 담담하게 노래하지만.... 댄의 머릿속에선 피아노 연주가 곁들여지고. 첼로의 풍성함이 곁들여지며. 드럼의 박진감이 더해진다.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악기들이 제각각 합주를 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각의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음악의 힘으로 치유하는 모습들은 여느 음악영화처럼(어거스트러쉬같은) 신파가 되기 쉽거나 억지스러울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매우 초연하고 자연스러운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모두의 아픔에 수긍할 수 있고, 모두의 치유를 응원하게 되는 영화이다.

타인의 아픔을 들춰내고, 헤집어 적나라하게 저잣거리에 아픔의 모가지라도 걸어놔야 속시원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따뜻함은 사라지고, 냉랭함만 감도는 세상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태도도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적어도 내가 보는 미디어 속의 현대인들은 그렇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응원하고 싶어지는 그 누군가가 내 자신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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