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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의 효용 - 백열전구에 대한 단상

눈 내리던 겨울밤, 엄마는 페달식 재봉틀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계시고 적당히 취하신 아빠는 읍내에서 호빵을 사와 검정 비닐봉지 째로 건네신다. 어릴 적 기억인데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영화 속 정지장면처럼 뇌리에 남는 건, 희한하게도 30촉 백열전구의 따뜻한 미장센때문이었다. 대학시절 남천교 옆 또순이네 포장마차에서의 가난했던 음주도, 지금은 사라져버린 전동성당 앞 커피숍에서의 낭만도 모두 백열전구의 색감으로 추억되곤 한다.
백열전구의 판매가 단계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형광등이나 삼파장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많고 밝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따뜻함을 주는 하나의 매개로 여긴다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퇴출되는 백열전구가 아쉽기만 하다. 서재의 제도스탠드와 식탁등을 백열전구로 바꿨다. 백열전구만이 주는 따뜻함과 평온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사람의 감성이라는 효용에 비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대기전력을 줄이고 에어컨을 덜 켜서라도 백열전구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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